Le Petit Trianon

Le Petit Trianon (French for ” the small villa”) is a Neoclassical style château located on the grounds of the Palace of Versailles. It was built between 1762 and 1768 during the reign of King Louis XV as a gift to King’s long-term mistress Madame de Pompadour. However, Madame de Pompadour died four years before its completion. Upon his accession to the throne in 1774, the 20-year-old Louis XVI gave the château to his 19-year-old Queen Marie Antoinette for her exclusive use and enjoyment.
쁘띠 트리아농은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 있는 신고전주의 건축물이다. 1762년에서 1768년 루이 15세의 자신의 애첩 퐁파두르 부인을 위해 지은 것이다. 하지만 완공되기 겨우 4년 전에 퐁파두르 부인이 사망하고, 이후 1774년에 루이 16세가 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이 궁전을 선물했다. 쁘띠 트리아농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개인적으로 즐기는 공간이 되었다.

Transcript

With the death of her mother, increasingly Maire Antoinette retreated from the life of the Palace.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마리 앙투아네트는 점점 궁전의 삶에서 물러났습니다.
She was devoted to her children, even deviated from court practice by taking part in their education.
그녀는 자녀에게 헌신했습니다. 심지어 궁정의 관습에서 벗어나 자녀의 교육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She was finding satisfactions in a private world of her own creation, transforming a 17th century summer villa on the grounds of Versailles into a little jewel of a palace called the Petit Trianon.
그녀는 베르사유 부지에 있는 17세기 여름 별장을 쁘띠 트리아농이라는 작은 궁전으로 개조해 그 사적인 세계에서 스스로 만족을 찾았습니다.
The Petit Trianon was a whimsical world of rustic fantasy, fashioned at the Queen’s command.
쁘띠 트리아농은 그녀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소박한 판타지 세계였습니다.
Her designers built ponds and stocked them with fish, channelled streams to meander through meadows, even created a rural village peopled with milkmaids milking cows, cheese makers making cheese, and shepherds leading sheep to pasture by ribbons of blue silk tied around their necks.
그녀의 디자이너들은 물고기가 헤엄치는 연못, 잔디밭을 관통하는 개울을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소젖을 짜는 메이드, 치즈를 제조하는 농부, 목에 푸른 비단 리본을 달고 있는 양들을 키우는 목동도 그 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She abandoned her elaborate court dress and took to wearing wide-brimmed straw hats and white muslin gowns.
그녀는 정교한 궁정 드레스를 버리고 넓은 챙의 밀짚모자와 하얀 모슬린 가운을 입었습니다.
She fished, gathered flowers, and acted in amateur theatricals in which she chose to play the roles of shepherdesses and dairy maids.
그녀는 낚시도 하고, 꽃도 채집하고, 연극에서 양치기 소년과 낙농 하녀의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It’s all about flowers, muslin, and going picnicking.
꽃, 모슬린, 피크닉의 세계였습니다.
She makes sure that flesh eggs are on the table for breakfast.
그녀는 아침 식사에 꼭 신선한 계란을 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She thinks, “yes, there’s a kind of little child in me. And the art of living well is to sustain the innocence of that child-like quality.”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겠죠. “내 안에 작은 아이같은 부분이 있구나.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삶의 예술이다.”
It’s very ironic, since a lot of her life is got to be spent defending herself against charges of corruption, pollution, wickedness, malice, deceit and so on.
참 아이러니하죠. 그녀의 인생의 많은 시간 동안 부패, 불결, 사악, 앙심, 기만등의 혐의에 대해 자기 자신을 변명해야만 했죠.
Even the king appeared to enjoy the Petit Trianon, although he could only go when his wife invited him.
심지어 루이 16세도 쁘띠 트리아농의 삶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초청을 받아야만 갈 수 있었습니다.
As Marie Antoinette flouted court etiquette and poured money into her whimsical hideaway, rumors spread and resentment grew as a time when France was rife with discontent.
마리 앙투아네트가 궁중 예절을 무시하고 자기의 안식처에 돈을 쏟아붓자 그녀에 대한 불만과 증오도 점점 커져 갔습니다.
The Petit Trianon gradually came to represent all the queen’s excesses and everything that was going wrong with France.
쁘디 트리아농은 점점 왕비의 사치와 프랑스의 모든 문제점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Le Petit Trianon Scene In Maire Antoinette (2006)
My favorite character in this movie is that lamb…😅😅😅
Maire Antoinette & The Petit Tria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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