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47 (2020)
Transcript
Mikhail Kalashnikov, you may not have heard the name but you’ve most certainly heard of the invention that made his surname, at least infamous. The creator of the AK-47 assault rifle has died aged 94.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당신은 그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었을지 모르지만 그의 이름을 악명 높게 만든 그의 발명품을 분명히 들어본 적이 있다. AK-47 돌격소총의 발명자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94세의 나이로 세상에 떠났다.
Born on Nov 10th, 1919, the son of Siberian peasants, Mikhail was still in his 20s and recovering from his experiences in World War II when he designed his simple, sturdy rifle as a competition entry held by the Soviet military.
1919년 11월 10일에 시베리아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미하일은 20대에 불과한 나이에 소련군의 제식 소총에 입찰할 목적으로 단순하고 튼튼한 소총을 설계한 시기는 그가 막 제2차 세계대전의 악몽에서 회복하고 있던 때였다.
His weapon was remarkable, easy to produce, easy to operate and very difficult to jam. As estimated 100 million were produced in assorted variants throughout the USSR and other countries. That’s one for every 70 people on Earth.
그의 무기는 놀랍고 생산하기 쉬웠고, 조작도 간편했으며 총탄이 잘 걸리지 않았다. 소련 및 기타 국가에서 다양한 변형으로 1억 개가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수는 전 인류의 70명마다 1개를 보유하는 수준이다.
And with millions of weapons came millions of deaths. The ubiquity of the AK-47 worldwide, from Africa to Asia to the Americas and to the Balkans, has meant it has killed more people than any other single weapon. Though exact numbers are not known, one statistic claims they still kill 250,000 people every single year.
그리고 수백만 개의 무기로 수백만 명의 죽음을 초래했다. 아프리카에서 아시아, 아메리카, 발칸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적으로 AK-47의 보편성은 다른 어떤 단일 무기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한 통계에 따르면 여전히 매년 250,000명을 죽이고 있다.
For his part, Mikhail was reportedly never troubled by the ubiquity of his weapon, stating he was proud of the gun, and that the politicians were responsible for how it was used. He did however, express his regret that so many terror groups and criminal gangs had managed to get hold of the weapons.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미하일은 자신의 무기의 보편성에 대해 근심해 본 적이 없고, 자신의 총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총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정치인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 많은 테러 단체와 범죄 조직이 무기를 손에 넣은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In his lifetime, Kakashnikov was lauded as a hero of the USSR and of Russia. Fighting as a decorated sergeant in World War II, he eventually rose to be a 2-star general. On his 90th birthday in 2009, President Dmitry Medvedev bestowed upon him the highest state honor, the Hero Of Russia gold star medal.
그는 평생동안 소련과 러시아의 영웅으로 찬사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훈장을 받은 중사관으로 참전했으나, 결국 2성 장군의 자리까지 올랐다. 2009년 그의 90번째 생일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그에게 최고의 국가 영예인 러시아의 영웅 금 훈장을 수여했다.
Despite the decorations, however Mikhail never profited from his weapon. He lived in a modest apartment near the Kalashnikov factory in Izhevsk, east of Moscow, once stating that whilst his American counterpart, M-16 designer, Eugene Stoner had his own plane, he himself couldn’t even afford the flight to Moscow.
영예를 많이 받았지만 미하일은 무기로 금전적인 이익을 보지는 못했다. 그는 모스크바 동쪽 이제브스크의 칼라시니코프 공장 근처에 있는 소박한 아파트에서 살았다. 한때 미국의 M-16을 디자인한 유진 스토너는 자신의 개인 비행기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자신은 집에서 모스크바까지 가는 비행기 티켓을 구입할 여유도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