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nghua Chicken Procelain Cup


성화투채계항배(成化鬪彩雞缸杯)는 무려 600억 원의 가치를 지닌 자기로 만들어진 물잔입니다. 왜 이렇게 비쌀까요? 바로 이 잔에 얽힌 특별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1449년, 명나라 영종 주기진(朱祈鎭)은 몽골 정벌 중 패배하여 포로로 잡혔습니다. 당시 영종의 큰 아들 태자 주견심(朱見深)은 겨우 두 살에 불과했기에, 영종의 동생 주기옥(朱祈鈺)이 황제로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3년 후, 명 대종 주기옥은 태자 주견심을 폐위시키고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책봉했습니다. 이로 인해 다섯 살의 주견심은 황궁에 갇혀 죄수와 다름없는 유년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어린 주견심 곁에는 늘 자신을 아끼고 돌봐주는 궁녀 만정아(萬貞兒)가 있었습니다. 그녀 덕분에 그는 고된 어린 시절을 비교적 평온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후 영종은 몽골에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고, 몇 년 후, 대종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영종이 복위했습니다. 1465년 영종도 세상을 떠나고 태자 주견심은 18세의 나이로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성화(成化)를 연호로 삼았으며, 이후 명 헌종으로 불리게 됩니다. 즉위 직후 그는 17살 연상의 궁녀 만정아를 귀비로 책봉하며, 어린 시절 받았던 은혜와 사랑에 보답했습니다.

다음 해, 만귀비는 아들을 낳았지만,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요절했습니다. 이후 몇 년 동안 헌종에게 다른 자식이 생기지 않자, 만귀비가 황제가 다른 후궁들과 동침하지 못하게 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만귀비는 이런 소문과 아들을 잃은 상처로 인해 마음을 닫고, 자기의 궁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헌종은 어미 닭과 병아리가 함께 노는 그림을 보고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장인에게 특별한 잔을 제작하도록 명령했고, 이를 만귀비에게 선물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 잔이 바로 “성화투채계항배” 입니다.

성화투채계항배는 섬세한 투채 기법으로 제작된 도자기로, 닭과 병아리가 어우러진 따뜻한 가족애를 담고 있습니다. 현재 이 잔은 전 세계에 16점만 남아 있으며, 그 중 13점은 세계 주요 박물관에, 나머지 3점은 개인 소장품으로 보관되고 있습니다. 2014년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는 그 중 한 점이 약 2.8억 홍콩 달러(한화 약 600억 원)에 낙찰되며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만귀비는 황후의 지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35세에 귀비로 책봉된 후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헌종에게 가장 총애받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헌종은 “그녀가 떠났으니 나도 떠날 때가 된 것 같다”라며 깊은 슬픔을 드러냈습니다. 결국 그는 한 달 뒤,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비탄 속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남송 시대의 유명한 시인 육유(陆游)는 “人有生老三千疾(인유생노삼천질),唯有相思不可医(유유상사불가의)”라는 유명한 구절을 남겼습니다. “사람에게는 수천 가지 병이 있을지라도, 오직 상사병만은 치유할 수 없다”는 이 시구는 헌종이 만귀비를 향해 품었던 깊고 진실한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한 구절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