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ut Script

Today, we celebrate Hangul Day, honoring the brilliant creation and the continuous, 600-year use of a script that is both accessible and easy to comprehend. Heartfelt thanks to Sejong the Great! However, when we reflect on human history, we find that numerous attempts at script creation, such as in the case of the Tangut Script, have stumbled and failed.

The Tangut Script was the writing system of the Tangut Empire, which existed from 1038 to 1227. Between 1032 and 1036, approximately 6,000 characters were created, orchestrated by the Tangut Empire’s first emperor, Li Yuanhao, who tasked the high-ranking official, Yeli Renrong, with its creation. Back then, the Tangut, much like the Goryeo, utilized Chinese characters for communication with the Song. While this practice offered communicative benefits, it inadvertently led to the leakage of military secrets. To resolve this issue and also to bolster national pride through a unique script, the Tangut Script was developed.

Created after Chinese characters, the Tangut Script actually became even more structurally complex than its model. I guess they did it on purpose! However, the issue was that, despite its writing complexity, it was neither a phonetic script, like Hangul, nor a logographic script, like Chinese characters. Hence, due to its lack of systematicity, it was quite challenging to learn. Thus, it found use only among the upper class and failed to spread widely among the common people. In 1227, the Tangut Empire was conquered by the Mongols and, consequently, fell. Naturally, the Tangut Script gradually faded with the passage of time.

Centuries later, in 1804, Zhang Shu, a historian from the Qing Dynasty, stumbled upon a tablet engraved with the Tangut Script in a temple in Liangzhou, Gansu Province, though he failed to interpret it. In 1908, a Tangut-Chinese bilingual dictionary, named ‘Fan Han He Shi Zhang Zhong Zhu,’ printed in the 12th century, was unearthed from an ancient tomb in Inner Mongolia, finally providing a crucial lead for interpretation. However, the number of people who know and can use the Tangut Script is restricted to a small group of linguists today, meaning it essentially remains a ‘dead script’ in history.

오늘은 한글날입니다. 이렇게 쓰기도 편하고 이해하기도 쉬운 문자를 짧은 시간 동안 창조해내고, 게다가 600년 동안 계속 사용하고 있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세종대왕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문자 창조를 실패한 사례도 꽤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서하문(西夏文)’이 있는데요.

서하문은 서하 왕조(1038-1227년)의 문자입니다. 1032년부터 1036년까지 4년에 걸쳐 6,000자가 새롭게 창조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서하의 초대 황제 이원호(李元昊)가 고급 관리 야리인영(耶律仁荣)에게 명하여 창조하게 한 문자입니다. 서하도 이전에는 고려처럼 한자를 사용하여 송나라와 소통했습니다. 한자 사용은 의사소통에는 유리했지만, 불행히도 군사 비밀이 유출되는 문제를 동반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자신의 문자가 있다는 자부심을 위해, 서하문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서하문은 한자를 모델로 만들었지만, 오히려 한자보다 구조가 더 복잡해졌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했겠죠? 하지만 문제는 쓰기가 어렵다고 쳐도 한글처럼 표음문자도 아니고, 한자처럼 표의문자도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이처럼 체계가 부족했기 때문에 배우기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상류층 사이에서만 사용되고, 서민들 사이에서는 널리 퍼지지 않았습니다. 1227년, 서하는 몽골에 정복을 당하면서 멸망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서하문 역시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몇 백년이 지난 1804년, 청나라의 역사 학자인 장주(张澍)가 간쑤성 양주(凉州)의 한 사찰에서 서하문이 새겨진 비석을 우연히 발견했어요. 하지만 그도 해석에는 실패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1908년, 내몽골의 고분에서 ‘반한합시장중주(番汉合时掌中珠)’라는 12세기에 인쇄된 서하문/한문 번역 사전이 발굴되었습니다. 이렇게 드디어 해석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서하문을 알고,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이제 소수의 언어학자들뿐이라, 사실상 ‘죽은 문자’로 역사 속에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