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 Ying: The First Chinese Envoy to Rome Empire

실크로드가 개통된 이후, 중국의 비단은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로 대량 수출되기 시작했고, 멀리 로마 제국에까지 전해졌습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비단이 매우 귀한 사치품으로 여겨졌고, 귀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카이사르 역시 비단옷을 즐겨 입었다는 이유로 원로원으로부터 지나치게 사치스럽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헌에는 먼 동방에서 비단이 생산되는 나라를 가리키는 ‘세레스(Seres)’라는 명칭도 등장합니다.

서기로는 97년인 한나라 화제(漢和帝) 영원 9년, 감영(甘英)은 사절단을 이끌고 로마 제국으로 가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감영은 계속 서쪽으로 이동한 결과 오늘날의 이란 일대에 위치하고 있던 안식 제국(安息帝國)을 통과해 안식 제국의 서쪽 해안가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원래 그곳에서 바다를 건너 로마 제국까지 갈 계획이었지만, 안식 사람들은 감영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바다는 매우 넓습니다. 순풍을 만나도 건너는 데 3개월이 걸리고, 바람이 좋지 않으면 2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은 보통 3년 치 식량을 준비해야 합니다. 게다가 바다에는 노래를 부르는 요괴가 있어 사람을 미치게 하고 바다에 뛰어들게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감영은 너무 긴 여행 기간과 함께 온 부하들의 안전을 고려해 결국 바다를 건너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서기 100년, 출발한 지 3년 만에 한나라로 돌아왔습니다.

후대 학자들은 안식 사람들이 한나라와 로마 제국이 직접 교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당시 안식 제국은 동서양을 연결하는 중요한 무역 통로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한나라의 비단과 같은 상품을 중간에서 사고팔면서 큰 이익을 얻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한나라와 로마 제국이 직접 교류하게 된다면, 중간 상인 역할을 하던 안식 제국의 경제적 이익이 크게 줄어들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안식 사람들이 바닷길의 위험을 일부러 과장해서 설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근데 오디세우스 이야기를 생각하면, 꼭 거짓말은 아니었을 수도 있어요. ㅋㅋㅋㅋ

어쨌든 결국 감영은 로마 제국에 가지 못했고, 그에 따라 한나라와 로마 제국도 이른 시기에 직접 접촉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게 되었습니다. 비록 최종 목적지인 로마에는 도착하지 못했지만, 감영의 여정은 고대 중국의 서방 탐험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원정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